고국을 등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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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등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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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방영된 MBC TV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에서는 뉴욕 검찰청 강력계 최연소 부장검사 된 정범진씨가 소개됐다. 지난 76년 미국으로 이민 간 어깨 아래로는 몸을 가눌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었다. 대소변을 보는 것은 물론 옷을 갈아입는 것조차도 혼자 할 수 없는 몸이었다.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그는 조지 워싱턴대 법과대에 다니던 25세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

 

누구나 공감하듯, 장애인의 편견이 없는 미국사회가 그의 성공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 미국정부는 정씨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자 엄청난 액수의 치료비 전액을 지불했다. 더욱이 그가 학업을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등교, 하교용 차량과 기사뿐 아니라 12시간 간병인까지 채용해줬다. 우리에게는 꿈 같은 얘기처럼 들린다.

 

IMF이후 잠잠했던 우리사회에 지난해부터 다시 이민 바람이 불고 있다. 신사년(辛巳年)의 새해 새 포부를 "이제 지긋지긋한 이 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다시 한번 시작해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21세기를 맞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는 모습이다. 지난해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국민의 4명중 3명은 우리나라가 살기 힘든 나라라고 말했다.

 

여기에 50%정도는 이민을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우리 사회에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비전이 팽배하고 있다는 증거다. 해외 이민을 떠난 사람은 지난해 약 1만 5,000명으로 99년 1만 2,655명보다 크게 늘어났다. 올해는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민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구조조정과 실업, 사교육비 급증, 부정부패, 정치혼란의 어두운 측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사회의 찌든 병이 치유는커녕 더욱 곪아만 가고, 이제 아무리 고름을 짜내도 내부에서는 썩어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실패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사회의 중추역할을 해온 사람들이며 앞으로도 그러한 생활을 할 사람들이다.

 

뚜렷한 자원도 없이 '사람의 힘'으로만 성장해 온 한국땅에서 이제 그 사람들마저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막상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도 엘도라도를 향해 떠나는 것은 아니다. 이민을 원하는 땅의 희망보다는 한국 땅에서 맛본 고통이 더 심하기 때문일 게다. 신사년 새해의 덕담은 이 땅이 아직도 희망의 땅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말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모든 개혁이나 변화의 최종 목표는 사람들이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이제 한국은 살기 피곤한 땅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들에게 아직 희망이 있는 땅이라고 설득할 수 있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는 문화가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이 땅에 발 붙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다.

 

강창현 (생활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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