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게시판 > 로뎀 나무그늘
로뎀 나무그늘

꽃상여 멘 여자들

로뎀 0 379

이태원의 기억 중 잊을 수 없는 사건이 그해 겨울에 일어났다.

평소와 다름없이 여자들은 마루에 둘러앉아 초겨울 햇살을 받으며 정심을 먹고 있었다. 이제 서서히 준비하고 일을 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이태원 자치회 회장이 들어왔다. 내일 아침부터 미8군 앞으로 다 모이라 한다. 여자 하나가 토벌 차에 치어 죽었는데, 시체를 미8군에서 돌려주지 않아,시위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힘이 빠지는지 여자들은 숟가락을 놓고 말없이 고개를 푹숙였다. 소방서 뒤에서 혼자 자치하고 있는 여자라고 했다. 부모는 병상에 있고, 동생은 앞 못 보는 장님이라 자신이 벌어 집안을 꾸려  나간다는 여자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녀를 본 기억이 났다. 그녀는 혼자서 일을 하다보니,  정기적으로 주는  토벌차와, 경찰서에, 다른 집들 처럼 돈을 주어야 하는데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여자였다고 한다  이태원이란 곳은 텃세가 심해서 혼자 있는 사람은 일정한 장소없이 떠돌면서 돈을 벌었다. 아가씨들이 윤락행위흘 하다가 걸려 들기라도 하면 경찰들은 너 누구네 집에 있어, 경찰들이 봐 주는 집에 있지 않으면 부녀보호소로 넘기고, 봐 줄만한 집에는 이름만 적어놓고 실그머너, 화장실 가라고 하면서 봐 준다. 그래서 아가씨들은 부녀보호소 가기가 싫어서 포주 밑에 있지 않고는 영업을 제대로 할수가 없어서 포주 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을 일을 두고 한마디 씩 한다. 아무리 토벌차가 우리들에게 호랑이 노릇을 한다고 하지만, 사람 생명을 그렇게 할수는 없는 거리고 한다. 아가씨들 말을 다 듣든 차치 회장은 아직 왜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현장에 있든 사람은 아가씨가 그차가 오는 것을 보고 뛰어 들었다는 사람도 있고, 무단 행단 하다가 차에 치였다는 사람도 있고, 한국 경찰이 조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아가씨들은 한마디 씩 한다. 경찰 놈들이 제대로 조사를 하겠나, 같은 통속 놈들인데.....자치 회장은 내일 만날 것을 약속하고 다른 집으로 가야 한다고 나가고, 아가씨들은 화장품 바구니를 놓고 하나같이 담배를 입에 물면서, 한숨을 내리쉰다. 우리같은 사람 죽는다고 누가 슬퍼 하겠나, 파리 목숨같은 인생 아가씨들은 포주 보고 오늘은 영업을 못하겠다고 하고는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대부분 부모 형제를 떠나 홀로 지내기 때문에, 서로 비밀들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죽은 여자도 집이 어딘지,가족들은 어디에 사는지, 가족들이 있다는 것은 입소문 로만 들었지 모른다고 한다. 경찰이 조사해 보면은 알겠지만, 그 당시 경찰들이 거리에 여자들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지며 찾으려고 도  하지 않는다. 여자 가 집을 나가면 이미 버린 자식과 다름이 없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이태원의  분위기가 돌연 엄숙해졌다. 누구 한 사람 크게 떠드는 사람이 없었다.장례가 끝날 때까지 목욕을 해서도 안되고, 손님을 상대해서는 더더욱 안되기 때문에, 여자들은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일을 할 수 없으니 잠념만이 떠올랐다. 죽은 동료를 생각하면서 신세 타령을 해댔다. 언제 포주의 빗을 갚고 해방되나....... 누군가 엄마를 부므며 울자 모두들 따라 울었다. 모든 사람에게 고향과 엄마는 실로 영원한 그리움이었다.

 

다음날 아침, 미8군 앞에눈 2백 명 정도의 여자들이 모였다 . 플레카드를 들고 시체를 돌려 달라고 데모를 했다. 그녀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평소 시달린 한과 고통을 이번 기회에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모 여대를 중태했다는 자치회장이 앞장을섰다. 나도 깃발을 들고 뒷따라갔다. 때마침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플레카드에 쓰인 글자가 검은 먹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연희를 살려내라"

시체를 찾지 못하면, 개죽음이 된다면서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여자들은 흥분하여 8군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억센 군인들과, 경찰들을 당해 낼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경찰과 밀리고 쫓기는 공방전을 벌이다가 해방촌으로 도망을 쳤다. 경찰들, 특히 여자 경찰들은 우리를 잡으려고 혈안이었다. 그들에게 잡히기라도 한다면  옷이 벗겨진체로 심하게 두둘겨 맞는다. 이곳 여자 들이라면 대게는 한두 번씩 경험이 있다. 그녀들은 여자 경찰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 날만은 달랐다. 여럿이 모여,여자 경찰의 얼굴을 가려 놓고는 두둘겨 패고 도망 다녔다. 결국  자치회 회장이 대표가 나서서 연희의 시체를 찾아왔다. 시체를 찾는 조건으로 시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오후, 미8군 정문 앞에는 버려진 피켓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함박눈은 그치지 않았고, 세상의 많은 것들이 눈 속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는 이태원  거리에서 그녀는 그렇게 버려졌고, 싸늘히 식은 몸으로 우리 앞에 다시 누웠다.

 

'양공주가 죽으면 "양공주' 들이 직접 상여를 매고 상복을 입는 전통이 있었다. 여러 집에서 대표로 나선 여자들이 상여를 맸다. 동내 사람들은 신기한 듯 모여서 수군거리고 미군 병사 몇 명이 뒤 따르며  사진을 찍었다. 미8군을 한바퀴 돌고는, 망우리로 영구차는 달렸다.  상여를 매지 않은  사람들은 트럭에 나누어 타고 뒤를 따랐다. 연희의 상여를 매고 오르는 길엔,남자는 없고 모두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의 울음 소리만이 망우리 산길을 매아리쳤다. 그 울음은 죽은 연의를  불쌍하게 여긴 탓도 있지만, 신들의 한스러운 신세 때문에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날 따라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다. 여자들의 소복에도 하얀 눈이 쌓였다. 세상의 온통 지저분한 것들을 하얀  눈으로  덮으려는 듯, 죽어 간 불쌍한 영혼을 달래려는 듯 눈은 한없이 쏟아졌다. 여자들은 곡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망우리 산을 내려오면서, 나는 그녀가 묻힌 작은 언덕을 바라다 보았다. 이미 그녀는 눈바람 속에 파묻혀 흔적조차 없었다. 또 하나의 죽음이 내 앞을 그렇게 지나갔다. (계속)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