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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 나무그늘

미국 선교를 다녀와서

로뎀 0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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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선교는 뜻하지 않게 이루어졌다. 센프란시스코에서 목회를 하는 신학동기가 연락이 와서 10주년 기념예배에 말씀을 전해 달라는 것이다. 정 목사와 나와는 뉴욕신학교동기이며 가장 친 할뿐 만아니라 기도로 똘똘 뭉친 동역자 들이 었다. 지금은 소천하고 안 계신 정명훈 (지휘자)어머니와 셋이서 신학 다닐 때 가장 친하게 지냈다.

정명훈어머니목사는 신학을 다니면서 교회를 개척하였다. 우리 들은 그 교회에서 모임의 장소로도 이용했고, 기도모임도 교회에서 이루어졌다. 정목사는 졸업 하고 이곳저곳에서 사역을 하다가 십년전에 센프란시스코에서 개척을 했다고 한다. 서로 소식은 전하고 친교를 가졌지만 사역지가 틀리다 보니 자주 만날 기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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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자식 때문에 기도를 부탁한 지인이  쌍둥이를 낳았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서, 쌍둥이도 볼겸 강목사님에게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나는 며칠 동안 나 나름대로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설교준비를 하여 미국선교의 길에 나섯다. LA에 도착하자마자 리버사이드기도원에서 부원장으로 계시는 고헬렌 목사님이 전화가 걸려왔다. 선교사님 나 고목사요, 샌프란시스코에서 끝나는 대로 맥시코로 가야 된다고 하신다. 목사님 왜요! 이번 집회 가 끝이 나면은 원로목사님 들과 세도나에 가기로 되어 있는대요! 그것 취소하고 맥시코로 가라는 것이다. 고헬렌 목사님과 나와 관계는 끊을 수 없는 관계다. 오늘 까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고헬렌 목사님이기 때문에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집회를 마치고 준영이와 함께 맥시코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싫었다. 준영이 형제는 한국최고대학을 나와서 대덕연구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하다가 어느 지인으로부터 피로회복에 좋은 것이니 한번 해보라고 해서... 그 말에 본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준영이 형제는 향사 범이 되어서 나를 찾아왔든 것이다, 준영이는 그 후 나를 도우면서 로뎀에 소금의 역할을 했든 것이다. 로뎀소식지도 그의 손에서 만들어 졌고, 로뎀로고도 그가 만들었다. 준영이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주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새벽마다 강남교회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한국에서 그대로 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더 넓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영국으로 보내서 아는 목사님의 도움으로 1년 동안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 가 올림픽에 있는 아주관광여행사에 삼년간 미국을 알기위해서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USC 버클리에서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YAHOO) 컴파니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결혼도 하고 안전 된 생활을 하면서 산호세에서 생활하면서 쎈프란시스코있는 강목사님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혼자서 맥시코로 가는 것이 불안해 보였든지 준영이 형제가 같이 동행을 하였다. 목사님이 준 주소대로 찾아가 보니 초라하기 짝이 없는 조그마한 한국교회 간판이 쓰였다. 문을 노코하니 우리를 기다렸다는 드시 목사님 내외가 우리를 반겨준다. 고목사님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잘 오셨다고 하시면서 오래전에 선교사님이 LA에서 사역 하실 적에 대리고 있든 형제들 때문에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그 형제자매들이 맥시코 까지 와서 마약을 밀매하다가 여기서 붙들려서 미국에서 추방까지 당하고 지금 교도소에서 재판을 기다린다고 말씀을 하신다. 목사님 은 그 분야 전문지식도 없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기도만 드리고 있었는데, 주님이 선교사님을 보내 주셨다고 하시면서 내 손을 잡고 감사하다고 하신다. 목사님이 저에게 감사할말은 아니죠, 저가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한국으로 간 것이 저가 잘못이지요!

 

우리가 도울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성도가 지금 4명인데, 한번 접견 가면은 그냥 돌아올 수가 없어서 조금이라도 영치금을 넣어주고 오는데 사모가 일을 하지 않으면 교회 운영하기가 힘이 든다고 하신다. 마약 가족 한분이 리버사이드 기도원에 기도하러 오신다고 합니다. 고목사님게게 상담도 하고 그래서 연결이 된 것 갔습니다. 우리들은 마약에 대해서 상식이 없어서 그렇지 멕시코 도 마약 때문에 심각해서 정부에서 골모리를 앓고 있습니다. 마약 때문에 하루에도 살인 사건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지금 LA에 있다고 합니까? 안그래도 그 문제를 물어보았더니, 가족들 마져 소식이 끊어진지 오래되고 토니라는 그사람 한분만이 고목사님하고 연결을 하고 ,정부에서 주는 시설에서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죽기 전에 손주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다고 합니다.

 

저도 나이도 많고 예전같이 활동을 많이 못 하고 지금 한국에서 살고는 있는데... 저는 멕시코는 처음입니다. 길도 생소하고 언어도 통하지 않고, 정말 난감하네요

선교사님 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님이 UN에서 활동할 때 자격증이 있다는 소식을 교도소에 있는 형제들에게 들었다고 하시면서, UN 에다가 진정서를 하나 써주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예전 일인데, UN 활동 안한지가 수십 년이 흘렀고. 지금도 유용한지 도 알아 봐야 겠습니다. 지금 내가 뭐라 말할 수 는 없짐, 알아봐서 목사님에게 연락을 하겠습니다. 그때 내머리에 스치는 그 무엇인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는 쓰도 못하는 자격증을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래요! 미국에서 는 변호사 선임하기도 쉽지가 않은데...준영이가 옆에 있다가 크리스티변호사에게 도와 달라면 어떨까요?

 

그 이튿날 그 형제들을  면회하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마약으로 찌든 얼굴들이 참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한국 청송감호소 보다도 못한 곳에서 고생하는 형제자매들 생각하면은 그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저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가슴이 많이 아팟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선교비를 털어서 그들에게 영치금으로 넣어주고 기도를 해주고 는 두 번 다시 이런 곳에서 나를 찾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그들과 헤어졌다. 나는 LA에 도착하는 즉시 변호사를 통해서 서류를 접수 했다, 좋은 일도 아니고 이런 일들을 가지고 부탁하는 것도 아는 변호사 이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아무 쓸모없이 서랍장에서 뒹굴고 있든, 자격증이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쓸 수 있다는 것에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 할적에 두려움이 앞섰다. 나는 내 스케줄에 따라 시카코 를 거쳐 수십 년 만에 정들었든 제2고향을 뉴욕을 찾는 다는 마음에 들떠 있었다. 뉴욕 라구디아 공항을 나오는데, 언니 하면서 혜자가 꽃 한송이를 들고 서 있지 않은가? 그 옆에는 장정 한사람이 서 있다. 언니 석이에요! 석이 가 안녕 하면서 인사를 하면서 나에게 포응을 한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혜자를 끄러 않고 울어버리고 마랐다. 혜자야! 죽지 않고 살아서 고맙다. 혜자도 나를 끄러않고 눈물을 흘리면서 한참동안 시간이 흘렀다. 언니 정말 보고 싶었어요! 나는 혜자가 살고 있는 맨해튼 집으로 갔다. 그 집은 프레이드 변호사가 나와 석이를 위해서 마련해 준 집이다.

 

혜자와 나는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만은 항상 그 곁에서 맴돌았다. 석이도 이제 세월이 흘러서 어엿한 장년이 되어서 결혼도 하고 변호사가 되어, 지나온 과거를 깨끗이 잊은 듯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 들은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버렸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 한 다고 하는데, 세 번이나 변했으니 나는 할 말이 없었다.혜자 는 할말은 많겠지만, 오랜 만에 만난 나에게 예전이나 지금 이나 변함없이 대하는 모습을 볼 적에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혜자의 기도와 끈질긴 인내심이 없었다면,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사마리아 간판을 걸고 선교를 하지 못 했을 것이다. 석이가 이렇게 자란것은 죤의 힘도 있었지만 그림자처럼 옆에서 버티어 준 혜자가 있었기에 아름답게 잘 자랄수가 있었다. 김남수 목사님과 나를 아는 모든 자매들은 하나같이 한국에 가지말고, 우리들 하고 같이 있자고 극구 말렸지만, 개선장군처럼 떠나야 한다고, 뉴욕식구들을 멀리 하고 떠난 내 모습이 뉴욕식구들에게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 선교를 통하여 나 자신을 또다시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사람을 사랑을 하되 믿지는 말자! 나의 신조처럼 또 한번 다짐을 한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뉴욕본부에 둘러서 서류가 접수 되었는지 확인하고, 나는 LA에 오는 비행기에 몸을 싫었다. 거의 삼십년 동안 부평초처럼 집한칸 없이 선교를 한다고 지구를 반바퀴 돌아 다닌 나 자신을 생각하니, 어느새 두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잘못 한것은 무엇이며, 잘한 것은 무엇인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보았다 비행기 창밖에는 저녁노을 도 붉게 물들어 있었고 아름다운 저녁노을 도  해가 지면은 사라지겠지.... 바둑판처럼 정돈된 LA 공항을 내려다보 니 아름답기가 그지 없었다. 저 집들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가진 가정은 얼마나 될가?짐을 찾아서 공항 밖으로 나오니, 멕시코에 계시는 목사님이 나를 마중 나온 것이다. 선교사님하고 부른다, 맥시코목사님 선교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고맙긴 내가 고맙다고 해야죠! 아무것도 모르는 목사님에게, 한국 사람이라는 이름 하나로, 그들을 위해서 열심히 뛰는, 그 모습에 내가 감사를 드려야죠! 목사님 주님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한국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십자가 불빛들이 소외되고 외로운 자들을 다 외면하고 있잖습니까? 목사님 우리들이라도 열심히 하는데 까지 열심히 해요!  고목사님 보시거든 고목사님 못 보고 한국에 간다고 말씀이나 전해주셔요, 나는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서 맥시코 가는 기름값이라도 하시라고 넣어주니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하신다. 목사님 받으셔야 해요, 적어서 안받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겨우 목사님을 돌려 보내고,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 나이가 되면은 허리 아프니 다리가 아파서 걷지를 못한다고 하면서 손주와 자식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저를 어여삐 사랑하시여, 아직도 건강한 팔다리리가 있으니 입으로 복음을 전할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수가 없다. 나는 가방 끈을 굳게 잡고 다음 선교지의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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