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게시판 > 로뎀 나무그늘
로뎀 나무그늘

회현동 민마담

로뎀 0 119

​​​​​​

회현동 민마담​​​​​​​​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했을 때가 내 나이 스물 셋이었다. 나는 억세게 운이 좋았다. 남들은 손님을 받는 나이에 나는 그 여자들을 거느리는 포주가 되었다. 그리고 돈을 벌었다. 내 나이에는 상상도 못하는 액수이다. 집을 나온지 3년이 체 안된 시간이기에, 어쩌면 나는 이 바닥에서는 나름대로 성공한 측에 속했다.

내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돈만이 중요했다. 어린 나이에 서울에 올라와 오빠들의 갖은 구박을 받은 것도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언니와 동생이 고생하는 것도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돈에 한이 맺혀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주머니에 돈이 꽉 차 있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xml:namespace prefix = o />

어린 시절과 내 몸뚱이를 보상받고 싶어서일까,

이태원에 드나드는 사람들 중에 일수 아주마가 많았다. 그녀들은 양공주나 구멍가게 주인들을 상대로 급한 돈을 빌려주고 하루하루 이자를 받아 갔다. 하루에 붙는 이자가 꽤 비쌋지만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무척 힘든 세상이라, 급하게 돈이 필요하면 어쩔 수 없이 빌려쓰곤 했다. 그 중에 회현동 아주마로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평양집에 매일같이 찾아왔다. 나는 돈을 빌리지 않았지만, 그 아주마는 내게 친절했다. 꼼꼼하게 돈을 모으는 자세가 됐다면서,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꼭 찾아올 거라고 용기를 북돋아주곤 했다. 아들이 소아마비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일수놀이를 한다고 하면서, 돈을 빌려 쓰지 않는 내가 좋다고 했다. 오히려 급하게 쓸 데가 있다면서 내게 돈을 빌려다라고도 했다. 이자는 후 하게 쳐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불 깊숙이 숨겨둔 달러 뭉치를 건네 주었다. 그녀는 매일 꼬박꼬박 이자를 가져다 주었다. 어느 정도 이력이 붙자, 나는 다른 여자들에게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원금보다도 이자가 많기도 했다. 한 달이 가고, 서너 달이 지날 무렵, 내 주머니는 제법 두둑해졌다.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비로소 눈뜨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럭저럭 이곳에 들어온 지도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는 그런 대로 이태원 뒷골목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낮에는 여자들의 잔심부름을 해주면서 용돈을 받아 챙겼고, 밤이면 손님을 불러오는 펨푸 생활로 돈을 모았다. 그러든 어느 날, 일수 아주마가 내게 동업을 하자는 재안을 해왔다.‘뒤는 내가 봐 줄태니, 내가 가르쳐주는대로 한 번 해봐, 큰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지금 가진 돈이면 충분해’ 그녀의 제안은 여자 장사, 일명' 콜걸 영업' 이었다. 사무실과 전화 몇 대만 있으면 영업할 수 있으니 위험이 있더라도 하고 싶었다.

주인이 된다면 밤에 손님을 모시러 나가지 않아도 되고, 돈도 많이 벌수 있으니 위험이 있드라도 하고 싶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펨푸생활도 위험은 따르는 것이고, 뒤는 회현동 아주마가 봐 준다고 했으니 도와 줄것 같았다.

독립을 결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주인 여자(포주)에게 떠나겠다고 했다. 주인여자는 잡지 않겠다면서 여자들만은 탐내지 말라고 했다. 나는 평소에 나에게 잘 대해 주던 애경이 언니와 같이 가기로 하였다. 주인 여자도 여자들의 빗을 갚아 주면은 할말이 없는 것이다. 포주들은 여자들이 빚을 다 값을 때가 되면은 어떤 수단을 쓰든지 빚을 지게 만드는 것이 이 세계에 현상이다. 나는 지긋한 2년의 이태원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회현동  아주마는 팔복여관 지하실을 소개해 주었다. 지하실에는 큰 방 두개 있었는데, 별체와 떨어져 있어서 우리가 생활하기는 좋았다. 남의 눈에 쉽게 띄지 않으니 조건은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는 것이다(계속)​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