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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 나무그늘

일본 밀항이 남긴 것

로뎀 0 69

배는 고기 잡이 배였다. 갑판 밑으로 들어가자, 놀랍게도 서른 명 가량의 여자 들이 비좁게 앉아 있었다. 순간, 배가 가라앉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여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려 보였다. 말씨로 보아 서울에서 온 듯했다. 술집 작부로 있다가  경기가 좋은 일본으로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무표정한 열굴에서 삶에 지쳐 자포자기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새삼 내 처지가 위안이 되었다. 최소한 몸을 팔려 일본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배가 바다로 나가기 전까지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잡판 아래로 내려가자 손정등마저 꺼졌다. 아직 약속한 두 사람이 오지 않았지만 10분 후에 출발을 한다고 했다. 보통 일본으로 밀항을 하려면, 1년 이상 치밀한 계희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밀항을 시키다가 잡힌 뱃사공들은 형무소 생활을 해야 되기 때문에 섣불리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1년 이상 기다린 사람들인데, 나는 보름만 에 배를 탈 수 있었으니 참으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쨌든 엔진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간장감이 돌았다.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캄캄한 실내에 옆 사람의 숨소리만 파도처럼 파고들었다. 캄캄한 바다, 동서남북을 알 길이 없고 사물을 분간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드디어 이 나라를 떠나는구나, 수물  세 해밖에 살지 앉았지만 50년은 더 산 것 같았다. 앞으로는 고달픈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서 이길을 택한 것이다. 정말  평탄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동 틀 무렵이 되자, 어느 산모퉁이 배가 닿았다.

 

배 주인은 일본에 다 왔다고 알려 주었다. 산을 넘으면 동네가 보이니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일행을 내려 주고 쏜살 같이 사라졌다.

우리는 배에서 내려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방향을 정한것도 아니고, 이태원에서 미군들에게 일본 오키니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거기도 미군 클럽이 있으리라 그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국에는 전쟁고아들이 거리를 장식을 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 보다도 잘살고 있다고 미군들에게 누누이 그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고 오키나와 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만 그곳으로 만 가면은 살길이 나설 것만 같았다.

배에서 같이 내련 젊은 아가씨들은, 아가씨를 기다린 사람들에 이끌려 차를 타고 손살같이 사라졌다. 나는 이태원에서 알든 미숙이가 미군과 결혼을 해서 오키나와 비행장 옆에서 산다는 막연한 소리만 듣고 찾아가니 서울에서 김 서방을 찾는 것이다. 농구화를 신고, 몸빼를 입은 체 산을 넘고  있는 내 모습이 전쟁터에서 싸우다 온 패잔병의 모습 같았다. 배 주인 말대로, 언덕을 넘어 마을 여관을 찾아가 방을 달라고 했다. 일본어를 모르니 이태원에서 배운 서툰말로 손짖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방값을 계산 하려고 달러를 내미니 종업원은 잠시 기다리라 했다. 달러를 내민 것이 실수였다. 일본 돈도 부산에서 바꾸어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경찰이 들어닥쳤다.

 

그후, 나는  오무라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밀항은 중죄에 속하지만, 일본에 다시 오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초범인지라 한 달 정도 있다가 풀려나서 영사관 직원의 이끌려 한국으로 올 수가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원효로에 있는 미8군 쇼단 단장에게 돈만 주면 얼마든지 외국에 데려다 준다는 것이었다. 이태원에서 2년이나 생활을 했는데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 그 때는 미국과의 인연이  아직 없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지만   언니 집에는 들어갈수 가 없었다. 당분간 이태원 쪽에 거처를 정하기로 했다. 산다는 것이 점점 두려워졌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돕는 사람도 없었다. 엄마가 왜 나를 버리지 못 했든가... 장애인 자식를 낳고 아버지 등쌀에 나를 성황당에 버려진 것으로 너무 울기에 엄마 가  차마 발길를 돌리지 못하고 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나를 엎고 키웠다고 동네 어른 들 사이에 그런 소리를 들었지만, 배우지도 못하고 결혼도 할수 없는 내 처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싶지만 않았다. 다시 먹고 살기 위해서 분단장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태원의 밤은 변함이 없었다. 휘황한 내온사인이지만 세월이 무상하다. 변한 것도 없고 무엇이 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운명에서 뛰쳐나가고자 수없이 노력을 해보았지만, 언제나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 하면서 여러  날을 보냈다. 궁리 끝에 그래도 나를 잘 아는 회현동 아줌마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녀는 시경 강력계장과 동거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집에 있던 아가씨  를 데리고 내가 하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니 회현동 건달 사건은 아줌마의 치밀한 계흭 이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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