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크라멘트 교도소로 이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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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크라멘트 교도소로 이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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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능한 변호사를 3명과, 교포미국시민협회장 소니아석 여사의 탄원서, 포드자동차 그레이스 김, 한미은행장 탄원서 등등 여러유명인의 탄원서도 냈지만, 미국이 제일 싫어하는 마약과, 세금, 윤락행위방지법이란, 범망 안에서 는 탄원서도 유능한 변호사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느꼈다. 나는 1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쎄크라맨트' 교도소 로 이감을 가게 되었다. 내가 재판을 받기전 검찰이 나를 불러내어서, 이런 질문 저런 질문을 묻더니, 내가 모른다고 하니, 비듸오를  하나 를 틀어주었다. 화면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주인공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언제 누가 찰영을 했을까?  또 가개에서 아가씨 들이 코케인을 하는 것을 어떻게 찰영을 했을가? 혹시 직원들 중에 정보원 이 있었든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수많은 종업원이 있고. 마네저 들이 매일같이 경찰을 감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사 생활까지 찰영을 할수 있었을까? 그때에는 몰래 카매라도 없든 시절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었다. 개미가 코끼리 를 보면은 다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미국을 잘 모르면서 함부로 덤벼 들은 것 갔다. 치밀하고 계흭을 세워서 오래전 부터 우리 가개를 요시찰로 보고 감시를 했든 것이다.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미국에 이민 와서 수십년을 자리 잡고 살아도 "팔로스버듸스' 에 감히 집을 장만 하고 살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제벌 들만이 살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현찰을 좀 만진다고 겁도 없이 함부로 집을 사고, 빌딩을 짖고, 하는 것이 이민 초년생으로 는 할수가 없는 일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법을 잘 지키면, 살아가기 가  편한 나라 이지만 . 법망을 피해서 살아간다면 언제가는 나같은 신세가 되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지금에 와서 삶을 후회하면은 무엇을 하겠는가?  내 인생은 이태원에서 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이다. 지상에서 천국이라는 스위스에서 도 살아 보았지만, 미국처럼 자유롭게 살지는 못한 것 갔다. 나는 감방에서 나와 이감을 갈적에, 경찰은 내 얼굴에 보자기를 덮어 씨우고,  발에 족쇄를 체우고, 손에수갑은 뒤로 묶여서 포송줄로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놓았다. 오직 움직이는 것은 발 밖에 없는데, 발에도 족쇄를 채워서. 한 발자욱 씩  움직일때 마다 발에 걸려 있는 쇄 소리가 내 가슴을 찢어지게 한다. 나는 물어보았다. 다른 재소자들도 교도소에 갈적에 나와 똑 같이 하느냐고 물으니, 경찰이 너는 중범죄자 라서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 왔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할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경찰관들의 도움으로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니 지하실에 갇혀 있든 공기 와,  세상 밖에 공기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공기는 분명히 달랐다.  "쎄크라멘트' 교도소로 가는 도중에 경찰들과 정심을 먹는 시간 외에는, 뒤로 묶여 있는 포송줄을 풀어주지 않았다, 손에 수갑은 풀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밖에서 마음놓고 맗은 공기로 숨을 쉴수 있는 것도, 나 나름되로 순간만은 행복했다. 수갑을 찬 체로 빵을 먹어도 불편한 것을 못느겼다. 이런 모진 고통을 격으면서도 먹어야 한다는 내 자신을 생각하니, 내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가 없었다. 인간의 삶이 무엇인데 내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생명을 연장해야 되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차라리 이러게 살아야 한다면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초마다 드는 것이었다. 푸른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서 왔는데, 이런 모진 고통을 격자고 여기까지 왔는가? 1년6개월을 어떻게 견디어 낼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들이 몸은 묶여 있지만 생각은 그들이 묶여 놓을수 가 없기 때문에, 교도소를 가는 동안 기회가 된다면 자살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차라리 화장실에 가서 혀를 깨물고 자살해 버릴까, 경찰들에게 의중을 떠 보았다. 그랬더니 너가 앉은 의자 가 화장실 대용으로 쓸수 있으니, 내 손이 뒤로 묶여 있는 것을 풀어준다. 그리고는 벨을 눌리니 의자가 양 옆으로 갈라지고 용변을 볼수 있는 변기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서 세상에 이렇게 조직적으로 잘되어 있는 나라 에서, 내가 무얼하겠다고 날뛰었는가? 경찰차에서는 자살 할 생각도 접어야 했다. 다섯시간 달려서 오는 도중에 경찰들이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들은 다 알고 있으니,  절대로 자포자기 하지 말고, 기운을 차리고 살으라고 한다. 나는 "쎄크라멘트' 교도소는 어떤 곳이냐고 물으니 여기는 중법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교도관의 말을 잘 듣고 특히 흑인 남미계통의 재소자들하고 싸우면 안된다는 것이다. 생명을 잃을수 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그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친다. 경찰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경찰한분이 주머니에서 쪼크렛 을 끄내더니 까서 입에 넣어주면서, 여기는  LA 하고 는 틀리는 곳이니, 몸조심하고 건강해서 나오라고 한다. 차는 어느듯 교도소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LA에서 온 경찰은 행운을 빈다고 하면서 떠나고, 나는 교도소 안으로 부축을 받으면서 들어갔다. 그리고 는 얼굴에 뒤집어 썻든 두건 도 벗어주고, 수갑도 풀어주고, 재수복도 한벌 주면서, 갈아 입으라고 한다. 수번을 들고 사진도 찍고, 그들이 하라는 대로 고분이 따라했다. 그리고 흑인교도관여자가 방 배취를 해줄테니 따라오라고 한다. 나는 그녀가 하라는데로 따라가고 있는데, 교도관이 들고 있던, 막대기로 나를 쿡쿡찌르면서  똑바로 걸으라고 한다. 나는 똑바로 걷고 있는데 막대기로 쿡쿡 찌르느냐고 하니, 교도관이 정색을 하면서 어디 한부로 죄인이 말을 하느냐고 하면서. 들고 있던 몽둥이로 머리를 친다. 내가 짐승이 아니고 사람인데, 왜 막대기로 툭툭치냐고 하니, 그 흑인교도관은 그 막대기로 인정사정없이 두둘겨 나를 패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위에서 누가 나를 말려 줄 사람도 없고, 두손으로 빌 수 밖에 없었다. 잘못 했다고 하니, 나를 질질 끌고 사무실로 대리고 가더니, 징벌방에 독방에 넣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거기서는 미국이 가장 자랑하는 인권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갔다. 나는 아무영문도 없이 살려달라고 하니, 무조건 캄캄한 어두운 독방에 가두고, 허리에 혁수정까지  채우고, 위에서 도루레식으로 된 식구통이 밖에 세상을 알려주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인간으로 서 견딜수 없는 모욕을 감수 해야 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 앉아 있어야 하는가? 얼마 전까지 만 해도 남들 부럽지 않은 부자였는데,.. 지금의 처지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완전한 절망, 더 이상 절망한  어떤 것도 없다는 사실이, 무중력 상태에 버려진 우주인처럼 둥둥 떠 있게 만들었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찾아준 사람은 프레이드 변호사와 계리사, 동철이 와, 집에서 일을 하든 가정부였다. 나를 배신하지 않은 마지막 사람들이다. " 가정부는 사장님 압류가 들어오기 전에 남아 있는 현금과 보석류를 빼냈습니다. 저는 그를 용기도 없었는데 계리사가 사장님 출소하시면 드려야 된다고 하시면서 보관해 놓았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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